미식축구가 재미있는 이유

오늘은 풋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럽에서 “풋볼”이라고 하면 축구(Soccer)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 풋볼이라 하면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를 뜻하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축구를 꼭 “Soccer”라고 불러야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저도 미국에 온 지 어느덧 17년 정도 되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가장 재미있게 보던 스포츠는 단연 야구였고, 그 다음으로 축구, 농구, 배구 등 웬만한 구기 종목은 다 좋아했습니다. 사실 미식축구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처음엔 꽤 이질적인 스포츠입니다. 어릴 때 접할 기회도 거의 없고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풋볼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왜 풋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보려 합니다.

첫째, 아들이 어릴 적 주변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풋볼 캠프에 일주일 정도 참여했고, 플래그 풋볼도 한 시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캠프에 가보면 아이들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형들이나 코치들이 상당히 마초적인 분위기로, 조금만 잘해도 과할 정도의 칭찬과 환호를 보내줍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정말 신나 하더군요. 예를 들어 와이드 리시버 연습을 할 때, “다운, 셋, 하이크” 후에 3초 앞으로 달리고, 다시 2초 오른쪽으로 달린 뒤 뒤를 돌아보라고 하면, 고등학생 형들이나 코치가 그 타이밍에 정확히 공을 던져줍니다. 캐치를 성공하면 또 엄청난 환호가 이어지죠.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첫째 이유는 “사람들에게 마초적인 자극을 준다”는 점입니다.

둘째, 대학교나 프로 미식축구 선수가 되려면 정말 엄청난 운동신경이 필요합니다. 러닝백, 타이트엔드, 와이드 리시버 같은 포지션은 전력 질주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멀리서 또는 아주 가까이에서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상대편 수비수들이 자기를 향해 돌진해 오는 순간에 말이지요. 아들이 어릴 때부터 공원에서 풋볼을 던지고 받으며 많이 연습해봤지만, 제자리에 서서 풋볼을 멋지게 멀리 던지고, 또 제대로 멋지게 받는 것 자체도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프로 선수들은 전력 질주 중에 점프해서 한 손으로 캐치해냅니다. 정말 운동신경이 극에 달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참고로 현재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와이드 리시버 DK 멧캐프는 100미터 기록이 10.5초 입니다.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으면 국가대표급 육상선수 기록이죠.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투수라면, 미식축구에서는 단연 쿼터백입니다. 순간 판단력과 정확한 패스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둘째 이유는 “선수들의 엄청난 운동신경에 감탄하게 된다”입니다.

셋째,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는 한 시즌에 162경기를 치르고, NBA는 82경기, MLS는 정규시즌만 34경기를 합니다. 경기 수가 상당히 많죠. 반면 미국 프로미식 축구 NFL은 정규시즌이 고작 17경기입니다. 플레이오프도 모두 단판 승부입니다. 3전 2선승, 7전 4선승 같은 건 없습니다. 경기 자체가 워낙 격렬하고 부상 위험도 크기 때문에 많은 경기를 치르기 어렵습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 플레이오프에 못 나가면 홈경기가 딱 8번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경기, 한 경기가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셋째 이유는 “경기 수가 적어 매 경기 몰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넷째, 풋볼은 점수 체계가 복잡하면서도 점수가 비교적 많이 나는 스포츠입니다. 동시에 2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예측 불가능합니다. 인터셉션, 펌블, 온사이드 킥 같은 변수로 큰 점수 차도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고 있어도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미식축구에 열광하는 미국 친구들과 축구(Soccer) 이야기를 해보면, 국가대표 경기는 보지만 일반 리그 경기는 재미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두 시간 내내 봤는데 0:0으로 끝나는 경기도 많아 조금은 지루하다는 거죠. 그에 비하면 풋볼은 점수도 많이 나고 전개도 훨씬 다이내믹합니다. 넷째 이유는 “점수가 많이 나면서도 변수가 많아 역동적이다”입니다.

다섯째, 대부분의 팀 스포츠가 그렇지만, 풋볼은 특히 팀 스포츠, 팀 플레이의 결정체입니다. 공격과 수비 각각 11명이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한두 명만 실수해도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거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고등학교까지는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선수도 있지만, 대학교와 프로 NFL에서는 공격팀, 수비팀, 스페셜 팀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 자기 역할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각 포지션 마다 백업들이 여러명 있습니다. 다섯째 이유는 “팀 플레이 그 자체에 열광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섯째, 다른 스포츠는 경기 시간이 계속 이어지지만, 풋볼은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마다 멈춥니다. 이 덕분에 다양한 전략을 상황에 따라 계속 바꿀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플레이가 나올 여지도 크죠. 쿼터백이 던질 수도 있고, 러닝백이 뚫고 달릴 수도 있으며, 와이드 리시버나 타이트엔드가 허를 찌르는 동선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각 플레이마다 몇 초 안에 이루어집니다. 공격이 다양하면 수비도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야겠지요. 공격 전술을 짜는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와,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물론 경기장 옆에서 같이 하기도 함) 수비를 지휘하는 디펜시브 코디네이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섯째 이유는 “다양한 공격과 수비 전략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입니다.

일곱째,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프로팀이든 풋볼 코칭 스태프의 숫자는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알던 리치랜드 고등학교 풋볼팀만 해도 코칭 스태프가 12~15명 정도였습니다. 대학교나 프로팀은 훨씬 더 많겠지요. 감독, 오펜시브·디펜시브 코디네이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코치들이 있는데, 특정 팀이 2~3년만 잘해도 코칭 스태프에게 다른 팀의 러브콜이 쏟아집니다. 반대로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자리를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풋볼 감독직은 흔히 “파리 목숨”이라고도 하지요. 우스갯소리로, 미국 각 주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공무원은 플래그십 주립대 풋볼 감독이고, 연방 정부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공무원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풋볼 감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곱째 이유는 “팀이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더 흥미롭다”입니다.

여덟째, 이건 특히 대학교 풋볼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엘리트 스포츠를 하면 대부분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하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나 대학교 풋볼 선수가 NFL 선수가 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디비전 I 대학교 (소위 1부 리그) 풋볼 선수만 해도 2-3만 명인데, NFL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선수는 매년 250명 남짓입니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프로팀 주전이 되는 선수는 극소수죠. 그래서 대학교 풋볼은 아직까지는 아마추어리즘이 강합니다. 4학년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추억”의 의미가 큽니다. 물론 요즘은 대학 풋볼에도 자본이 많이 유입되었지만요. 여덟째 이유는 “대학 풋볼에는 아직 그래도 아마추어리즘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아홉째, 이는 풋볼만의 이유라기보다 스포츠 전반에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낍니다 (국가, 민족, 인종, 학연, 지연, 그 외 온갖 것들을 통해서요). 스포츠 역시 그런 역할을 합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생기고, 그 팀이 잘하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경쟁과 전쟁을 반복해 온 것처럼, 스포츠는 그 본능을 안전하게 풀어내는 하나의 매개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풋볼은 경기가 많지 않습니다. 늦여름부터 겨울까지 금요일은 고등학교 풋볼, 토요일은 대학교 풋볼, 일요일은 프로 미식축구로 이어지기때문에 풋볼시즌이 되면 주말만 기다리지요. 결국 풋볼은 같이 응원하며 웃고 우는, 미국에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쓰다 보니 글이 상당히 길어졌네요. 어느새 풋볼 시즌도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시애틀 시혹스가 올해 잘 하면 슈퍼볼 우승도 할 수 있을것 같아서 갑자기 써 봤습니다. 이 긴 글을 다시 고치기도 귀찮아서 그냥 이 정도에서 그냥 올립니다. ^^

Detailed view of “The Duke”, Sunday, Sept. 8, 2024, in New Orleans. The Saints defeated the Panthers 47 – 10. (Perry Knotts via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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