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미국인 아줌마(?) 2명 이랑 같이 쓰고 있는데요.
한명은 2주전에 딸을 낳고 지금 출산 휴가중에 있고, 나머지 한명이랑 둘이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끔씩 문 닫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할때가 많죠. 뭐, 아줌마라고 해도, 둘다 나이는 저보다 1-3살 어립니다.^^
오늘은 미국인 스탭이 찾아와서, 같이 이야기 하다가, 무너진 Ph.D.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미국의 현재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앞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될거라면서 이야기를 꺼내더라구요.
사실 뭐 이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인지하고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요…
이 이야기의 발단은,
우리 그룹과 같이 공동연구를 2년정도 해오던 오레건 대학에 있는 박사후 연구원이 있는데
결국은 학계나 연구소에 자리를 못 잡아서, 9월 1일부터 벤처 회사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 몇번 만나봤는데, 과제도 잘 이끌어가고 똘똘한 미국인이었는데요…
결론은 지금 미국에 너무나도 많은 Ph.D.가 일자리를 찾고 있어서
대학교 조교수나, 국립 연구소에 정규직으로 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은 재정위기로 인해서 올해 국립보건원(NIH), 국방부(DOD), 에너지부(DOE) 등에서
지원해 오던 연구비를 더 늘리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삭감하는 분야도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현상이 최소 2-3년간은 지속될 것 같은 상황이구요..
미국도 정부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R&D 분야 배정 예산을 줄이는 방법이 가장 쉽겠죠.
2-3년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Ph.D.를 배출하던 나라가 미국이었죠.
그러나 몇년 전부터인가, 중국에게 추월을 당했습니다.
미국은 거의 5만명정도의 Ph.D.가 매년 배출되고, 중국은 이미 5만명이 넘는 사람이 매년 Ph.D.를 받고 있습니다.
놀라지도 않으시겠지만, 한국에서는 2년전인가, 드디어 일년에 만명이 넘는 학생이 Ph.D.를 받고 졸업을 하지요.
중국, 미국의 총인구수나 경제 수준에 비교해봤을때는 한국의 Ph.D. 숫자는 어마어마하죠…
저도 그중에 한명이었고… —
문제는, 이렇게 많이 나오는 졸업생들이 갈만한 직장이 졸업생 숫자만큼 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데요.
1년에 교수직, 국공립 연구소 정규직 자리가 얼마나 될까요?
실력/운/상황/시기 등등이 모두 잘 맞물려, 자리를 잡는 사람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겠지만..
취업 시장에서 Ph.D.를 받고 몇 년안에 잘 풀리지 않으면, 참 어렵게 됩니다.
학위과정에 투자한 시간과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큰 손실이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의 100여개가 넘는 연구중심 대학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대학원생들이 Ph.D.를 가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겠죠?
사실 이런 ‘학문의 스승과 제자’라고 하는 것은 옛날 과학적 호기심을 탐구하던 귀족들이
자기가 하던 것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요. (1명으로부터 오직 1-2명에게만)
지금은 1명의 교수가 1년에도 여러명의 Ph.D.를 졸업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지요.
그런 지도교수는 재임기간에 얼마나 많은 Ph.D.를 졸업시키겠습니까?
미국에서도 한 학과에서 Ph.D. 학생을 20명 졸업시킬 동안 신임 조교수를 1명 뽑을까 말까 한답니다.
사실 tenure-track 조교수도 요즘은 뽑기 버거워서, 연구 교수들만 많이 뽑고 있지요.
(미국은 워낙 대학이 종류도 많고 그 편차도 크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위 내용은 제 주변 미국인들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
교수직을 바라보던 학생, 아니면 연구소에서 연구직을 찾던 사람 모두가 원하는 대로 갈 수가 없으니
차선, 차차선으로 다른길을 모색하게 되는데요, 회사로 가서 좀더 다른 방향으로 경력을 키울수도 있겠고,
공부한 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버퍼링도 앞으로 몇년을 버틸 수 있을지가 다들 걱정입니다.
오늘 대화의 주제도 이 버퍼링이 기간인데요, 벌써 Ph.D. education system은 Broken이라고 하더라구요
미국에서 졸업하는 매년 5만명의 Ph.D.에다가, 또 중국, 인도, 한국에서 학위 받은 사람들도
모두 미국에 나와서 경력을 쌓고 싶어 하니 (저도 마찬가지죠..)
정말 미국의 Ph.D.가 갈 수 있는 양질의 Job Market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푸념하더라구요.
물론 앞서 말한 실력/운/상황/시기가 잘 맞으면 잘 풀리겠지만,
점점 공급이 넘쳐나면 확률적으로 성공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는 것이 되겠지요.
거기다가 매년 누적되는 엄청난 숫자가 더해진다면요….
얼마전에 예전에 같이 일했던 중국인 친구랑 잠깐 이야기 했는데요, (지금은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연구 교수)
요즘 미국내 생명공학이나 의약학 분야에 정년트랙 조교수 모집에
기본적으로 200명 이상 지원을 하고 그 중에 2-3이 인터뷰까지 가서 결국 한명 뽑는데요,
그렇게 가도, 연구중심대학에서는 5-6년 후에 70%의 조교수를 Tenure 심사에서 탈락시키기 때문에
소위 요즘 말로 ‘멘붕’이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중국인 친구가 2년전에 Columbia 대학교에 조교수로 들어갔는데,
연구비 따오는 일이 정말 정말 힘들다고 자기한테 하소연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미국인들도 지금 힘든데, 외국인으로서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더욱 더 힘이 드는것은 당연하겠지요.
예전, 미국의 경기가 좋을때는 보통 과제 선정율이 30% 정도였다던데..,
얼마전 회의에서 들은바로는 미국 국립보건원 과제 평균 선정률이 예전에는 20%였는데,
지금 7%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바이오 분야는 원래 경쟁이 심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이 7% 수준도 실제 평가를 받은 과제제안서 숫자를 기준으로 하기때문에,
실제 review 단계도 못넘어가는 총 지원자로 나눠보면 0.5% 조금 넘을꺼라고 하더라구요.
즉 200명의 Ph.D. 들이 연구비를 받고, PI가 되기위해 지원하면, 단 1명에게 그 기회를 준다는…
각 대학교에서 Tenure-Track 조교수를 뽑지 않고, 연구교수들을 많이 뽑고 있고
그 연구 교수들은 과제제안서를 쓸수가 있고, 연구비를 구해와야지만 버틸 수 있기때문에
다들 과제 제안서 쓰느라고 힘들다고 합니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 한국에 있을때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앞으로 Ph.D가 너무나 많아져서,
용역회사에서 관리하는 인부처럼 되는 때가 올지 모른다고… T.T
학문/연구를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빨리 실적/경력을 갖추고 졸업해서
원하는 직장 구하는 일에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현실인가요?